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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 코인은 디지털 금이 아니다 — 주인 없는 장부 이야기
tags: [코인, 돈, 구조독법]
created: 2023-05-10
modified: 2023-05-28
modified: 2026-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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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인 설명을 들으면 늘 중간부터 시작해. 블록체인이 어떻고, 채굴이 어떻고, 지갑이 어떻고. 그래서 다 듣고 나도 "그래서 그게 왜 돈인데?"가 안 풀려.
코인 설명을 들을 때마다 중간부터 시작한다는 느낌이 있었다. 블록체인, 채굴, 지갑. 다 듣고 나서도 그것이 왜 돈인지는 남았다.
순서가 잘못됐어. 코인을 이해하려면 돈이 뭔지부터 봐야 해. 그리고 돈은, 우리가 배운 것과 다르게, 처음부터 물건이 아니었어.
순서를 바꿔야 했다. 코인을 이해하려면 돈이 무엇인지부터 봐야 한다. 그리고 돈은 처음부터 물건이 아니었다.
## 돈은 물건이 아니라 기록이었다
교과서는 이렇게 가르쳐. 옛날엔 물물교환을 했는데 불편해서 → 조개·금 같은 걸 돈으로 쓰다가 → 지폐가 나왔다.
교과서의 순서는 이렇다. 물물교환이 불편해서 조개와 금을 돈으로 쓰다가 지폐가 나왔다.
인류학 쪽에선 이 순서가 틀렸다고 봐. 물물교환만 하는 사회는 실제로 거의 발견된 적이 없대. 대신 발견되는 건 외상 기록이야. 메소포타미아 점토판에 "누가 누구한테 보리 얼마를 빚졌다"가 적혀 있는 게 동전보다 2천 년 넘게 앞서. *(데이비드 그레이버 쪽 주장이고, 학계에서 논쟁이 있긴 해.)*
인류학에서는 이 순서가 틀렸다고 본다. 물물교환만 하는 사회는 실제로 거의 발견된 적이 없다. 대신 발견되는 것은 외상 기록이다. 메소포타미아 점토판에 "누가 누구에게 보리 얼마를 빚졌다"가 적혀 있고, 이것이 동전보다 2천 년 넘게 앞선다. (데이비드 그레이버 쪽 주장이고, 학계에 논쟁이 있다.)
즉 동전보다 장부가 먼저였어.
동전보다 장부가 먼저였다.
### 야프 섬 돌
이걸 가장 깔끔하게 보여주는 게 태평양 야프 섬이야. 거기 돈은 거대한 돌이었어. 사람 키보다 큰 것도 있어서 옮길 수가 없었지.
이것을 가장 깔끔하게 보여 주는 것이 태평양 야프 섬이다. 그곳의 돈은 거대한 돌이었다. 사람 키보다 큰 것도 있어서 옮길 수 없었다.
그래서 어떻게 썼냐면 — 안 옮겼어. 돌은 그 자리에 그대로 두고, "이제 저 돌은 쟤 거"라고 마을 사람들이 같이 기억했어.
그래서 옮기지 않았다. 돌은 그 자리에 두고, "이제 저 돌은 저 사람 것"이라고 마을 사람들이 함께 기억했다.
심지어 배로 옮기다 바다에 빠뜨린 돌도 있었는데, 그것도 계속 재산으로 쳤어. 아무도 못 보는데도. 다들 "저 밑에 있는 저 돌은 쟤 거"라고 기억했으니까.
배로 옮기다 바다에 빠뜨린 돌도 있었는데, 그것도 계속 재산으로 쳤다. 아무도 볼 수 없는데도 "저 밑에 있는 돌은 저 사람 것"이라고 모두가 기억했기 때문이다.
돌은 상징이고, 진짜 돈은 마을의 기억이었던 거야.
돌은 상징이고, 진짜 돈은 마을의 기억이었다.
> 돈은 물건이 아니라 기록이다. — [[장부]]
### 지금도 똑같아
### 지금도 같다
네 통장에 있는 숫자, 그거 어디 있어? 금고에 네 몫의 지폐가 따로 쌓여 있는 게 아니야. 은행 컴퓨터에 적힌 한 줄이야. 송금은 돈이 날아가는 게 아니라 한 줄을 빼고 한 줄을 더하는 것이고.
통장에 있는 숫자는 금고에 따로 쌓인 지폐가 아니다. 은행 컴퓨터에 적힌 한 줄이다. 송금은 돈이 날아가는 것이 아니라 한 줄을 빼고 한 줄을 더하는 것이다.
바뀐 건 기록하는 도구뿐이야. 점토판 → 돌 → 종이 → 데이터베이스.
바뀐 것은 기록하는 도구뿐이다. 점토판, 돌, 종이, 데이터베이스.
## 그래서 진짜 문제는 "장부를 누가 쓰냐"
## 그래서 진짜 문제는 장부를 누가 쓰는가다
돈이 기록이면, 중요한 건 그 기록을 누가 쥐고 있냐야.
돈이 기록이면 중요한 것은 그 기록을 누가 쥐고 있는가다.
역사상 답은 늘 같았어. 한 명. 왕, 성전, 은행, 중앙은행.
역사상 답은 늘 같았다. 한 명. 왕, 성전, 은행, 중앙은행.
그리고 장부를 쥔 쪽은 할 수 있는 게 많아:
- 한 줄 더 적어서 돈을 새로 만들기
- 특정인의 줄을 얼어붙게 하기
- 특정 거래를 없던 일로 하기
장부를 쥔 쪽은 할 수 있는 것이 많다.
이게 음모론이 아니라 구조야. 고칠 수 있는 자리에 앉아 있으면 고치게 돼 있어. [[구조가 선택을 강제]]하니까.
- 한 줄 더 적어서 돈을 새로 만든다
- 특정인의 줄을 얼린다
- 특정 거래를 없던 일로 한다
그래서 질문이 생겨. 장부를 아무도 안 쥐게 할 수는 없을까?
음모가 아니라 구조다. 고칠 수 있는 자리에 앉아 있으면 고치게 되어 있다. [[구조가 선택을 강제]]한다.
그래서 질문이 하나 생긴다. 장부를 아무도 쥐지 않게 할 수는 없는가.
## 디지털이 되자 생긴 문제 — 복사
종이에서 데이터로 넘어오면서 편해진 대신, 치명적인 구멍이 하나 생겼어.
종이에서 데이터로 넘어오면서 편해진 대신 치명적인 구멍이 하나 생겼다.
디지털은 복사가 공짜야.
디지털은 복사가 공짜다.
사진을 친구한테 보내도 내 폰에 그대로 남지. 그게 사진이면 좋은 일인데, 돈이면 재앙이야. 보냈으면 내 것이 없어져야 하거든. 같은 돈을 두 번 쓰는 걸 이중지불이라고 해.
사진을 보내도 내 폰에 그대로 남는다. 사진이면 좋은 일이고 돈이면 재앙이다. 보냈으면 내 것이 없어져야 한다. 같은 돈을 두 번 쓰는 것을 이중지불이라 한다.
중앙 관리자가 있으면 이건 쉬워. 은행이 "A에서 100 빼고 B에 100 더함" 한 줄 쓰면 끝. 장부가 하나뿐이니까 두 번 쓸 수가 없어.
중앙 관리자가 있으면 쉽다. 은행이 "A에서 100 빼고 B에 100 더함" 한 줄을 쓰면 끝이다. 장부가 하나뿐이니 두 번 쓸 수 없다.
그래서 디지털 돈에는 관리자가 필수였어. 1990년대부터 "관리자 없는 디지털 돈"을 만들려는 시도가 계속 있었는데(DigiCash, b-money, bit gold 같은 것들) 전부 이 벽을 못 넘었어.
그래서 디지털 돈에는 관리자가 필수였다. 1990년대부터 관리자 없는 디지털 돈을 만들려는 시도가 이어졌지만(DigiCash, b-money, bit gold) 전부 이 벽을 넘지 못했다.
## 왜 그렇게 어려웠나
관리자를 없애려면 모두가 장부를 하나씩 갖고 있으면 될 것 같잖아. 근데 바로 문제가 터져.
관리자를 없애려면 모두가 장부를 하나씩 가지면 될 것 같다. 그러면 바로 문제가 터진다.
누구 장부가 맞는 건데?
누구의 장부가 맞는가.
A가 같은 돈을 B랑 C한테 동시에 보내. 어떤 사람은 B 거래를 먼저 받고, 어떤 사람은 C 거래를 먼저 받아. 순서가 사람마다 달라. 그럼 누가 맞아?
A가 같은 돈을 B와 C에게 동시에 보낸다. 어떤 사람은 B 거래를 먼저 받고 어떤 사람은 C 거래를 먼저 받는다. 순서가 사람마다 다르다.
"다수결로 하자"도 안 돼. 인터넷에서는 한 명이 수천 명인 척할 수 있거든. 계정은 공짜로 만들 수 있으니까. 머릿수로 정하면 계정 많이 만든 사람이 이겨.
다수결도 안 된다. 인터넷에서는 한 명이 수천 명인 척할 수 있다. 계정은 공짜로 만들 수 있으니 머릿수로 정하면 계정을 많이 만든 사람이 이긴다.
이게 30년간 안 풀린 진짜 문제였어. 암호 기술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누가 먼저인지 합의하는 법"이 없어서.
이것이 30년간 풀리지 않은 문제였다. 암호 기술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누가 먼저인지 합의하는 법이 없어서였다.
## 사토시가 한 일 — 설득이 아니라 가격을 바꿨다
2008년에 나온 해법은 기술보다 구조가 핵심이야.
머릿수로 정하지 말고, 일한 양으로 정하자.
2008년에 나온 해법은 기술보다 구조가 핵심이다.
장부에 한 줄 쓰려면 어려운 계산 문제를 먼저 풀어야 해. 전기와 시간이 드는 진짜 비용이야. 푼 사람이 그 줄을 적고, 나머지는 그걸 베껴. 이게 작업증명이야.
머릿수로 정하지 않고 일한 양으로 정한다.
이러면 뭐가 달라지냐 —
장부에 한 줄 쓰려면 어려운 계산 문제를 먼저 풀어야 한다. 전기와 시간이 드는 진짜 비용이다. 푼 사람이 그 줄을 적고 나머지는 베낀다. 작업증명이다.
계정을 아무리 많이 만들어도 소용없어. 표는 계정 수가 아니라 계산량으로 세니까. 거짓 장부를 밀어넣으려면 나머지 전부를 합친 것보다 더 많은 전기를 태워야 해.
계정을 아무리 많이 만들어도 소용없다. 표는 계정 수가 아니라 계산량으로 센다. 거짓 장부를 밀어 넣으려면 나머지 전부를 합친 것보다 더 많은 전기를 태워야 한다.
즉 사토시는 사람들한테 정직하라고 설득하지 않았어. 대신 거짓말을 정직보다 비싸게 만들었어.
사토시는 정직하라고 설득하지 않았다. 거짓말을 정직보다 비싸게 만들었다.
> 설득은 비싸고 구조는 싸다. — [[구조가 선택을 강제]]
이게 코인의 진짜 발명이야. 암호도 아니고 블록체인이라는 자료구조도 아니야. 아무도 안 믿어도 굴러가게 판을 깐 것.
이것이 코인의 진짜 발명이다. 암호도 아니고 블록체인이라는 자료구조도 아니다. 아무도 믿지 않아도 굴러가게 판을 깐 것.
## 그럼 코인은 뭐냐
## 그러면 코인은 무엇인가
여기까지 오면 코인이 뭔지 저절로 나와.
문제를 풀어 장부를 적어 주는 사람에게 보상을 줘야 한다. 공짜로 전기를 태울 사람은 없다. 그 보상이 코인이다.
문제를 풀어서 장부를 적어주는 사람한테 보상을 줘야 해. 공짜로 전기를 태울 사람은 없으니까. 그 보상으로 주는 게 코인이야.
코인은 돈이기 전에 장부를 굴러가게 하는 연료다.
그러니까 코인은 "돈"이기 전에 장부를 굴러가게 하는 연료야. 순서가 이래:
```
주인 없는 장부가 필요하다
→ 장부를 적어줄 사람에게 보상이 필요하다
→ 그 보상이 코인이다
```flow
주인 없는 장부가 필요하다 -> 적어 줄 사람에게 보상이 필요하다 -> 그 보상이 코인이다
```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순서(코인 = 디지털 금)랑 반대야.
그래서 가격이 왜 움직이냐도 여기서 나와. 코인에는 공장도 매출도 없어. "이 장부를 앞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쓸 거라고 믿느냐"가 값의 거의 전부야. 믿음이 값이니까 흔들림도 크고.
코인을 디지털 금으로 보는 순서와 반대다.
그리고 이더리움은 여기서 한 발 더 간 거야. 장부에 "누가 얼마"만 적지 말고 "이런 조건이면 자동으로 이렇게 한다"는 규칙도 같이 적자. 장부가 계산까지 하게 된 거지.
가격이 왜 움직이는지도 여기서 나온다. 코인에는 공장도 매출도 없다. 이 장부를 앞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쓸 것이라고 믿는가가 값의 거의 전부다. 믿음이 값이니 흔들림도 크다.
## 한 줄로 압축하면
이더리움은 여기서 한 발 더 간다. 장부에 "누가 얼마"만 적지 않고 "이런 조건이면 자동으로 이렇게 한다"는 규칙도 함께 적는다. 장부가 계산까지 하게 됐다.
> 코인은 디지털 금이 아니야. 주인 없는 장부야.
## 한 줄로
그래서 코인을 볼 때 물어야 할 건 "이거 오를까"가 아니라 이거야:
> 코인은 디지털 금이 아니다. 주인 없는 장부다.
이 장부는 주인이 정말 없나? 없다면, 그게 누구한테 필요한가?
그래서 코인을 볼 때 물을 것은 오를까가 아니다. 이 장부는 주인이 정말 없는가. 없다면 그것이 누구에게 필요한가.
주인이 사실상 몇 명한테 몰려 있으면 — 이름만 코인이고 그냥 느리고 비싼 은행이야. 반대로 진짜 주인이 없다면, 그게 필요한 사람이 누구고 얼마나 되는지가 그 코인의 값어치 전부고.
주인이 사실상 몇 명에게 몰려 있으면 이름만 코인이고 느리고 비싼 은행이다. 진짜 주인이 없다면, 그것이 필요한 사람이 누구이고 얼마나 되는가가 그 코인의 값어치 전부다.
기술을 보지 말고 판을 봐. [[밖을 본다]]
기술이 아니라 판을 본다. [[밖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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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어진 개념
이 글에 쓰인 개념
→ [[장부]] · [[구조가 선택을 강제]] · [[밖을 본다]]
→ [[장부]] — 돈은 물건이 아니라 기록
→ [[구조가 선택을 강제]] — 설득 대신 거짓말의 가격을 올린 것
→ [[밖을 본다]] — 기술이 아니라 판